좋은생각

시각 혁명

해탈의향기 2012. 8. 21. 11:08

 

 

  내가 문화부 장관을 지낼 때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하지요.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문화부가 처음 생겼을 때 초대 장관을

맡게 되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고심한 것은 첫인상을 국민들에게

어떻게 심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관청이라고 하면 금세

딱딱한 관료주의가 연상되지 않습니까.  문화야말로 마음이 우러

나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화부에서 관료주의 냄새가 난다면

어떤 일을 해도 그것은 불행한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한 것이 탈관료주의를 선언하고 일반 기업에서 하는

것처럼 CI운동을 벌였던 것이지요.  한마디로 관청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문화부에서 쓰는 현수막이나 선전탑,포스터, 블로셔 같은

데 일반이 잘 안 쓰는 안상수체를 도입한 것입니다. 이 낯선 로고

타입 때문에 관청 냄새를 씻은 것은 물론 사람들 눈에도 잘 띕

니다.  그리고 컴퓨터 글씨 같은 느낌이 듦으로 새로운 현대감각

이 나지요.  이 비주얼 아이덴티티(VI), 즉 시각적 통일 때문에

안상수체만 보면 '아! 문화부"라고 금방 사람들이 알아차립니

다.  이 때문에 일반 정부 행사와 문화부 행사를 얼른 구별하게

되고 따라서 시민들의 참여도도 높아졌지요. 문턱이 높은 관청일

텐데도 쉽게 접근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별로 행사를 많이

벌인 것이 아닌데도 이 로고 타입 덕분으로 문화부가 이벤트를

많이 하는 것처럼 인식되어 나를 이벤트 장관이라고 부르는 사

람들도 있었지요.  말하자면 정부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

관료성. 홍보성과 같은 것을 시각 디자인의 전략을 통해서 개선

하고 차이화하는 데 얼마간의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할 수 있습

니다.

  제가 관청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어떻게 이미지 전략으로 바

꿔 놓았는가 하는 이야기를 할 때 이미 CI운동은 기업 커뮤니케

이션의 CC단계로 옮아 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분이 있었을

것으로 압니다. 단순한 차이화가 아니라 그리고 시각적 통일만이

아니라 이미지는 정보차원으로 높아져야 하는 제삼의 단계로 올

라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관청을 하나의 기업으로 옮겨 봅

시다.  기업의 직종에 따라서 어느 분야나 부정적 이미지와 긍정

적 이미지를 갖고 있지요.  그러기 때문에 이제는 상품만 팔아서

는 그리고 자사의 제품만을 내세워서는 소비자의 마음을 끌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말하자면 상품과 함께 그 상품의 정

보성을 함께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추상적인 말보다 구체적인 사례가 더 이해하기 쉽겠지요. 내가

일본에 가서 축소지향이 화제에 오르자 관심을 갖고 맨 먼저 세

미나 연사로 초대한 것이 산토리라는 양주회사였지요.  산토리

하면 그만큼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업으로, 가장 강한

기업문화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어요.  그런데 왜 산

토리는 기업문화에 힘을 쓰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좀 생각해

봅시다.

  첫째, 술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술이라 하면 우선 이태백을

연상합니다. 낭만적인 시심과 창조적인 상상력입니다.  도취하는

것이 술이듯이 물질적 편리와 이익이 아니라 마음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문화입니다.  술처럼 문화예술에 가까운 상

품도 없을 겁니다.  사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합니다마는 가끔

주석에서 어떻게 문학을 하는 사람이 술을 마시지 못하느냐고

비웃음을 사기도 합니다.  시인은 잉크가 아니라 술로 시를 쓰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술에는 긍정적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파괴적인 요

소도 있습니다.  반사회적인 성격이 강한 상품이어서 한때 미국

같은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에서는 금주법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술을 파는 기업은 이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사회성을 획득하기 힘듭니다.

  맹자는 무엇을 만드는 장인이라 해도 사람을 죽이는 창보다는

생명을 보호하는 방패를 만드는 직업이 더 좋다고 말한 적이 있

습니다.  그러기에 술과 함께 술의 문화에 대한 정보를 함께 팔

아야만 합니다.  말하자면 문명 속에 알코올만이 아니라 문화성과

사회성을 담아야 합니다.  산토리가 문화를 중시한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산토리에서 펼치고 있는 기업문화의 역점 사업들은 원래 사시

에 속하는 이익 삼분주의의 원칙에 의해 이루어진 것들이지요.

즉 이익의 3분의 1을 국민들에게, 사회에게 돌려 주자는 것입니

다. 생각해 보십시오.  왜 이런 사시를 만들었겠습니까.  술을 마

시는 것이, 산토리의 양주를 마시는 것이 사회에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회적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

렇다고 가가호호에 이익금을 분배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일

이 가능하다 해도 실제로 돌아가는 것은 몇푼밖에 되지 않을 것

입니다.  그러고  보면 작은 것으로도 온 국민이 누릴 수 있는 것은

문화예술밖에는 없습니다.  감동적인 노래를 만들어 주면 온 국

민이 부를 수가 있고, 아름다운 그림 하나를 걸어 놓으면 두고

두고 모든 국민이 감상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회가

부드러워지고 아름다워지면 공기를 맑게 하는 것처럼 온 국민이

그 신선하고 건강한 문화의 바람을 쏘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무엇보다도 자기 기업의 이미지는 그 업종을 차별화하는 데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지요.  술은 감동입니다.  밥만으로는 살 수 없

습니다.  비경제 가치의 추구가 술이요. 문화의 특색이라면, 문화와

술은 통일시킴으로써 기업상품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들 수

가 있습니다.  결국 산토리가 문화행사를 많이 하는 것이나 술을

파는 것이나 한 차원 높여서 보면 같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클래식 음악 전용 홀인 산토리 홀을 만들었을 때 사람들은 의

아해했습니다.  도대체 양주 메이커와 음악홀이 무슨 관계가 있

는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런 질문을 받은

산토리측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음악이란 귀로 마시는 술이 아니겠는가."

  사실 이 산토리 홀의 내부장식을 보면 샹들리에의 모양이 맥주

거품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음악홀만이 아니라 산토리는

술로 번 돈으로 각종 문화행사와 문화기관 시설을 하고 있으며

문화재단을 만들어 기여하고 있지요.

  그런가 하면 와코루라는 회사는 인간의 몸을 기업문화의 핵으

로 삼고 있습니다.

  와코루라는 일본 기업은 창업 당시에는 여자들의 브로치나 핸

드백을 파는 양품잡화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브래지어의 판매

에서 성공을 거두자 여성 속옷 전문 메이커로 변신하게 됩니다.

거기에서 다시 보디 패션에 기업의 뿌리를 두고 다음에는 '신체

산업'을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즉 와코루의 기업문화는 신체문

화의 창조가 되는 겁니다.  인간의 몸이란 무엇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눈에 나타나는 몸과 어떻게 조화하는가, 그 아름다

움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해답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 이 와

코루의 상품개발이며 판매이지요.  그러니까 와코루는 복식 문화

재단 같은 비영리 연구기관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술은 술의 문화 아래, 옷을 파는 기업은 인체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데서 그 기업의 목표와 긍지를 찾는 것이지요.

  이것은 소비자 일반 시민들에게 자기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볼 수 있지만 사실은 그보다도 사내

커뮤니케이션, 곧 왜 우리는 이 기업에서 일해야 하며 무엇 때

문에 우리는 이 기업을 발전시키려고 하는가 하는 사원들의 의

식통일과 자긍심을 심어 주는 일입니다.  단순한 상품의 차이화가

아니라 기업 전체의 차이화를 통해서 소비자와 기업의 조직을

활성화하는 힘입니다.  무엇을 생각하는 기업이며 무엇을 전하려

고 하는 기업인가를 대내외로 뚜렷하게 알리려는 것이지요.

  기업문화는 결국 이러한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단계로 나아가

면서 비로소 제 형태를 갖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브랜드와 로고

타입과 같은 경제 레벨에서 사회문화 레벨로 그 이미지가 높아

지는 것입니다.

 

 

 

 

ㅡ 이어령《그래도 바람개비는 돈다》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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