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21세기에는 여성이 없다?/ 백지연

해탈의향기 2013. 3. 23. 13:46

 

 

 

 

 

  몇 년 전부터 여러 사회학자, 미래학자들이 새로이 시작될 21세기를 점쳤다.

21세기는 디지털시대다.  정보화의 시대다.  지식의 시대다 등등. 그 중에서 내

귀를 가장 먼저 잡아당긴 것은 '여성' 을 화두로 올린 예견, '21세기는 여성의

시대가 될 것이다' 라는 말이었다. 그러한 예견에 고무된 여성이 어찌 나뿐이겠

는가.

  남아선호 사상이 팽배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던 우리 사회에서

언젠가부터는 '딸이 더 좋아' 라는 말이 설득력을 갖게 되고,  '부인한데 잘해'

하는 농담 아닌 농담이 오고가기도 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좋을 일이다. 내

가 여성이라서가 아니다.  그 동안 억압받던 계층인 여성이 사회적 소외에서 벗

어나 비로소 공평한 사회가 되려는 출발 지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여성의 시대는 오는 것일까? 아니, 그런 예견은 타당한 것일까?

장밋빛 환상은 금물이다.  새로운 시대에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임승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착각하지 말자, 역사적으로 아무런 노력이나 투쟁 없이,

존재적 조건으로만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계층, 계급은 없다.  그러므로 여

성의 시대가 된다는 그 예견에 대해 '왜' 라는 질문을 한번 던져보자.

  미래학자들이나 사회학자들은 다음 세기가 여성의 시대라는 것을 이렇게 설

명하고 있다.  21세기 유망 직종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정보통신 분야이다.  미래

사회는 물리적인 힘보다는 소프트하고 섬세한 마인드가 필요한 시대이니만큼 많

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여성 고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다. 앞으로

는 힘의 논리보다 융통성과 조화로운 마인드가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문화의 부가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미에 대한 감각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

으로 높은 여성이 유리할 것이라는 접근도 있다.  미래 유망 직종이 주로 컴퓨

터 네트워킹 전문가, 쇼핑 호스트, 관광 기획자 등으로 꼽히면서 이들 직종에

서 활약하는 데는 여성이 더 유리하기 때문에 미래의 국가경쟁력은 여성 인력

의 활용에 달려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예견들에는 하나 같은 공통점이 있다.  여성의 시대가 될 것이

라는 이유들의 공통 분모가 e-비즈니스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미래의 축은 정보통신인데, 거기에 필요한 재능이라는 것이 여성들이 많이 갖

고 있는 섬세함, 진득함 등등의 감수성과 특유의 감각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

니까 엄밀히 말하면 21세기는 '여성'의 시대가 아니라,  '여성성' 의 시대인 것

이다.

  21세기는 여성성의 시대이며, 여성적 사고가 각광받는 시대다.  여기서 굳이

'여성' 이 아니라 '여성성' 이라 하는 것은, 21세기가 요구하는 것은 성별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감각과 사고로서의 여성성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성성을 꼭 여

성들만이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남성 또한 여성적 감성과 사고, 즉 여성성을

가질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여성이라 해도 여성적 감성과 사고를 활용하지 않

는 한, 21세기가 아무리 여성성의 시대라고 해도 어부지리를 얻을 수 없다는 것

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여성들이 더 유리할 것이다.  여성은 그렇게도 중요한

'여성성'을 이미 본능적으로 갖고 있으니까 말이다.

 

 

  21세기는 여성성의 시대!

  미국의 저명한 마케팅 컨설턴트인 페이스 팝콘 또한 '21세기는 여성성의 시

대' 라고 힘주어 말하며 여러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그는 우선 21세기는 감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 논의는 여성과

남성 사이에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는 지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남녀 불평등

의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닌, '다름' 의 개념을 말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여성

과 남성의 정보처리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뇌의 활동 연구를 통해 밝혀냈다.

신경학자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감각적 식별 능력이 탁월하고 감정에 충실하며

관찰력이 더 예민하고, 동정심이 많다고 말한다.  여성들의 이러한 성향은 감성

의 시대라는 21세기에 맞아떨어지는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21세기는 연대의 네트워크의 시대라고 그는 말한다.  여성이 남성보

다 네트워킹에 더 능하다는 것이 관련 연구자들의 이야기이다.  여성은 어떤 만

남에든 개인적 의미를 부여하고 거래보다는 인간적으로 좀더 의미 있는 관계

를 원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식당에 가면 여성은 대화를 원하고 남성들은 먹

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또 남성은 자신의 독자성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언어

를 사용하지만 여성은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고 하니 네트

워킹 사업에 여성성이 더 필요하다는 방증(傍證)이 된다.

  또한 앞으로의 비즈니스는 경쟁을 통해 적을 물리치고 밀어내야만 하는 전

쟁이 아니라 네트워킹 속에서 효율과 효과를 높이는 관계를 지향한다는 예측

도 여성성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미래의 기업은 사회적 기관이다.  '좋은 물

건 만들어 잘 팔면 된다' 는 생각은 구시대적 사고이다.  고품질만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온라인(on-line)거래가 오프라인(off-line)거래보다 더 활성화

되면 고객의 충성심을 유발하는 기업만이 승리한다.

  인터넷은 습관성이 있어서 한번 클릭한 곳에 지속적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고객이 일단 클릭해 들어갔다가 그 기업의 서비스와 배려에 만족하면 다시 찾

아가게 되고 나중엔 그 기업의 사이트에 고정적으로 들어가게 되는 충성도

가 생기게 된다.  이제 이런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는 기업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연대와 네트워킹이 필요한 미래 세계에서는

무조건적인 경쟁보다는 배려와 나눔이 필요하게 되고,  따라서 여성성이 각광

받게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여성의 내성, 즉 끈기는 20세기에도 그랬듯이 21세기에도 계속해

서 적극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다.  여성의 '내성'과 '끈기' 는 구시대에 여성에

대한 편견과 억압을 끊임없이 참아오면서 강화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여

성 특유의 끈기로 컴퓨터 앞에 앉는다면 남성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어떤 역사

가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여성성의 시대에 살아 남기 위해서 꼭 여성일 필요는 없다' 는 말은 많은 여

성에게 도전이 될 수 있다.  '여성의 시대' 라는 말만 믿고 무임승차하려는 여성

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이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 여성들은 '21세기는 여성의

시대' 라는 추상어에 메몰되지 말고, '21세기는 여성성의 시대' 라는 구체어 속

에서 자신의 여성성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여성성을 21세기에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발휘할 것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그럴 때에 21세기는 비

로소 진정한 '여성의 시대' 가 될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나는 요즘 'e월드(e-world)' 에 빠

져 있다. 나는 그곳에서 제2의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0년 간 남성들과의

이분법적 대응에 맞서느라 퇴화되고 녹슬었을지도 모를 내 여성성을 두 눈 크

게뜨고 찾아보고 있다.

  21세기, 여성성이 각광받는 시대가 우리의 기대보다 다소 늦게 진행된다 하

더라도 난 걱정하지 않는다.  e-월드에서 기술는 여성에게 최상의 동맹군이 되

어주기 때문이다.  e-월드에서 기술은 계급적  서열도 가리지 않고 학력의 서열

도 가리지 않으며 지연, 학연의 구분도 없다.

  더구나 e-월드에 들어가면 남성도 없고 여성도 없다.  그곳에서 나는 그저 '나'

일 뿐이다.  드디어 공정한 (fair) 경쟁을 벌일 수 있는 장(場)이 마련된 것이다.

  ㅡ 백지연《나는 나를 경영한다》중에서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