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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반기문

해탈의향기 2013. 5. 13. 03:20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SG 워너비 프로젝트

      2005년부터 외교가에서는 차기 유엔 사무총장을 우리 나라에서 내보자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정부도 적극적이었다.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이 나오게 되면 앞으로 10년간 국제정치적으로 예민한 한반도 문제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정부는 그 후보로 30년이 넘는 외교관생활과 유엔에서의 실무경험으로 국제사회에서 입지가 탄탄한 반기문 외교부 장관을 공식후보로 선정했다.  그때부터 외교부 직원들과 외교부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는 'SG 워너비 프로젝트' 라는 말이 자주 입에 오르내렸다.

 

      'SG 워너비' 는 인기 있는 남성 보컬 그룹의 이름인데 미국의 듀엣 그룹인 사이몬 앤 가펑클처럼 되고 싶다(wannabe)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외교부와 외교부를 출입하는 기자들이 사용하는 뜻은 달랐다.  SG란 '사무총장(secretary General)' 의 약자로 '유엔 사무총장이 되고 싶은 사람', 곧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을 뜻했다.

 

      우리 정부는 후보를 결정하고 3개월짜리 엠바고(Embargo)를 요청했다.  엠바고란 단어는 수출금지조치, 언론 보도통제라는 뜻이 있다.  기자들이 사용하는 엠바고라는 용어에는 취재는 하되, 정해놓은 일정 시점까지 보도를 하지 않는다는 서로의 약속을 의미한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한다는 사실을 아직 터트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꼭 욕심이 앞서 엠바고를 깨는 기자들이 나온다.  한 언론사의 기자가 교묘한 방식으로 엠바고를 깼다.  유엔 사무총장 후보결정 사실을 간접적으로 흘린 것이다.  하지만 외교부는 국익이 달린 문제라며 엠바고를 끝까지 지켜줄 것을 수시로 요청했다.  기자들은 '그래, 한번 잘 해 낼 수 있도록 지켜보자' 는 심정으로 3개월을 모두 기다렸다.

 

      엠바고가 풀릴 시점인 2005년 12월, 우리 정부는 또 다시 언론사 기자들에게 엠바고를 요청한다.  이번에는 2개월짜리였다.  당연히 외교부 기자실에서는 "아니 언론사들이 정부 방침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녀야 하는 거요?"라는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렇게 비밀리에 진행되는 선거 운동 방식에 대해 회의적인 기자들도 적지 않았다.  

 

      "후보를 먼저 세계 만방에 알리고 열심히 뛰어다녀도 될까 말까일 텐데 그렇게 비밀리에 움직여서 어디 되겠어요?'  사실 그때만 해도 기자들은 물론 일을 추진하는 정부 실무자들도 정말 우리나라에서 유엔 사무총장이 배출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몇몇 언론사들이 이제는 더 기다릴 수 없으니 기사를 내보내야겠다고 했다.  

 

      사실 이 같은 엠바고 요청은 치밀한 전략과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다.  언론에 공표하기 전에 사전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언론을 통해 다 알려지기 전에 좀 더 친밀한 자리를 마련해 의논을 하거나 자문을 구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공식적으로 출마 선언을 하기에 앞서 선출권이 있는 사람에게 '제가 이번 선거에 나가려고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제가 이번에 출마해 이런저런 일을 해보고자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으면 겸손하고 신중한 이미지를 만들 수도 있고, 상대방은 자신에게 의견을 물어오니 존중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할 수 있다.  그러니 언론에 먼저 다 발표한 다음에 "이번 선거에 내가 출마한 거 잘 알죠? 그러니 무조건 좀 도와주시죠" 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런 선거운동 전략은 다분히 반기문의 타고난 성품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겸손하지만 치열한 그의 기질을 닮은 선거 전략이 국제무대에서도 통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2006년 2월 14일, 드디어 엠바고가 종료됐다.  반기문은 방송 카메라 앞에서 결연한 표정으로 출사표를 읽어 내려갔다.

    

      "제가 오늘 차기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나섰습니다.  유엔과 함께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그동안 유엔이 추구하는 목표를 성취한 모범적인 국가로 발전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신장된 국력과 국제사회의 지지에 힘입어 유엔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저는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추천받은 것에 대해 겸허함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앞으로 국민 여러분과 유엔 회원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성원을 당부합니다."

 

      정부는 외교 경로를 통해 북한에서도 반기문의 유엔 사무총장 출마를 알렸다.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이 배출된다면 한반도 평화 정착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뜻이었다.  북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암묵적인 동의로 해석됐다.

 

      국회에도 직접 찾아가 지원을 당부했다.  현직 장관이라는 신분 때문이었다.  혹시 선거 전략상 중대한 시점에서 자칫 야당 의원들이 부정적인 시각으로 흔들어대기라도 하면 전체적인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기에 그러한 사태를 미리 막아놓기 위함이었다.  국회의원들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프로젝트이니 만큼 여야을 막론하고 끝까지 변함없는 지지를 약속했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유엔 사무총장을 선출하는 권리를 가진 나라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원국이다.  안보리 회원국은 상임이사국 5개 나라(미국, 러시아, 영국, 중국, 프랑스)와 비상임이사국 10개 나라(가나, 그리스, 덴마크, 슬로바키아, 아르헨티나, 일본, 카타르, 콩고, 탄자니아, 페루, 비상임이사국의 임기는 2년으로 돌아가면서 한다)다.  반기문은 이 나라에만 집중적으로 선거운동을 벌이지 않고 유엔에 소속된 회원국을 모두 아군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전방위적으로 접근하기로 결정했다.  저인망식 선거운동에 들어간 것이다.  그때부터 반기문 후보는 초인적인 일정을 소화해내야 했다.  그 엄청난 일을 잘 소화해낼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지만 바닥부터 탄탄히 쌓아 올라온 그의 역량은 그 엄청난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ㅡ 신웅진《바보처럼공부하고 천재처럼꿈꿔라》중에서 ㅡ